도시건설

 1948 10 19, 창춘은 장기간 포위속에 있다가  평화적으로 해방된다. 신중국이 성립된 후 창춘은 한때 직할시였다가 훗날 1954년 길림성 성도로 지정된다. 60여 년의 발전을 거쳐 창춘시의 경제, 문화, 민생, 생태 등 방면에는 천지개벽과도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2007년 중국 도시경쟁력 보고에 따르면 창춘의 종합경쟁력은 전국에서 제28위를 차지했고  동북3성 성도 중 1위였다.  2011년 창춘시는 막강한 과학기술 혁신력과 경제발전 잠재력으로 국가 혁신형 시범도시로 비준되었다.

 

 동북아지역은 범 세계적 경제시스템 중 가장 활력과 잠재력이 있는 지역중의 하나고 세계경제 총량의 5분의1을 점하는 거대한 시장을 가지고 있으며 창춘은 마침 동북아경제권의 기하학적 중심지에 위치해 있다. 국무원이 비준한 국가급 전략기획 중국 투먼쟝지역 합작개발 기획개요창지투(长吉图)를 개발개방 선도구로 조성한다》중,  창춘은 중심지에 위치해 있어 하얼빈-따롄 경제벨트를 잇고 창지투(长吉图) 발전을 견인하는 중요한 사명을 맡고있으며 집중적으로 억대 급의 경제궐기 벨트를 조성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창지투 개발개방전략의 인도로 창춘은 기존의 특색있는 산업을 다지는 한편 대외개방과 발전의 발걸음을 다그치고 지역 합작과 개발의 수위를 높이며  창지투 개발개방 선도구의 중요한 사명을 완성할수 있도록 노력중이다.

 창춘은 선후로  미국, 영국, 일본, 한국 등 19개의 나라의 19개 도시와 자매도시 관계를 체결했고 60여개 국가, 지역과 안정적인 경제무역 관계를 건립했으며 세계은행으로부터  “중국내륙에서 투자환경이 가장 좋은 도시”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전 시에는 3자기업 (중외합자, 중외합작, 외상독자)이 총 4000,  그중 “세계500” 중의 폭스바겐, 펩시콜라, 월마트, 지멘스 등 70개 기업이 선후로  정착했다. 해마다 여러 종류의 전시행사가 200차 이상 열리고 전시회 경제총량은  무려 전 시 서비스산업 증가량의 14.3% 점한다.